Journal2025. 1. 17. 19:05

 

David Lynch <1946.01.20 - 2025.01.16>

 

향년 78세 나이로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가 별세했다.

그의 작품 멀홀랜드 드라이브 <Mulholland Drive>를 무척 좋아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보고, 듣고, 느끼며, 악몽 속을 거니는듯한 감각은 지금도 선연하다.

서사나 맥락, 이야기를 구성하는 논리나 지혜 같은 요소들이 기승전결처럼 존재하지 않고,

지적인 사고 없이 오로지 직감과 감정으로 영화를 받아들이는 체험

논리와 대척점에 있는 추상적인 시도들에 총합 같은 느낌은

언제부턴가 나에게 '예술'하면 떠오르는 가장 본능적인 감각처럼 남았다.

생전 컬트작가로 불리며 소수에게만 열렬히 소비 되어온 그의 작품세계에 경의를 표한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명제처럼 마침표를 강요하는 시대에

매듭짓지 않은 물음표만으로 실존을 표현해 온 그의 생이

오늘 날 예술과 대중매체에 끼친 영향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광대하고, 크다.

다시 한번 위대한 예술가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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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posted by Sin Jun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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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injunho
Journal2024. 12. 24. 18:56

Post Archive Faction<PAF>

 

언제부턴가 국내 패션 브랜드를 이야기하는 생소한 소문이 국제적인 언어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정식으로 패션을 배운 적이 없다거나, 레고를 좋아했다거나하는 웅성거림 말이다. 해외 유학을 경험하지 않은 디자이너가 주목받은 사례가 드문 한국패션 씬에서 만화에 나올 법한 소문의 진상은 모두 실화였고, 그런 배경 앞에는 늘 소문보다 먼저 주목받은 브랜드와 옷이 존재했다. 이렇듯 미끈한 이력 한 줄 없이 브랜드와 제품이 가진 힘만으로 자신의 드문 이력을 넉넉히 넘어선 새롭고 걸출한 패션 브랜드의 등장이었다.

 

포스트아카이브팩션<Post Archive Faction> 파프<PAF>는 한국인 임동준과 정수교가 지난 2018년 설립한 국내 패션레이블 이름이다. 구태여 줄임말을 서브네임처럼 나란히 병기한 이유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지명도를 얻은 패션 브랜드의 명칭을 근래에 와서 편의상 줄여 부르는 현상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단 포스트아카이브팩션에서 출시하는 제품에 부착된 내부 라벨과 겉으로 브랜드의 서명이 드러난 제품에 파프<PAF>라고 표기하는 방식을 브랜드가 줄곧 추구해 왔기 때문이다.

 

 

처음 파프에 대해 알게 된 건 저명한 해외 패션매거진에서 개설한 온라인 공간의 작은 모퉁이 기사를 통해서였다. 물론 이국이 아닌 모국에서 어떤 식으로든 스친 경험은 있었겠지만, 브랜드의 주체와 배경, 국적을 우연처럼 확인한 경로는 모국어 다음으로 가장 친숙한 외국어로 된 기사에서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파프는 나에게 무명(無名)에 가까운 브랜드였다. 먼저 여기서 무명이라는 표현에 어떠한 부정적 함축도 없음을 밝힌다. 그만큼 파프가 선보이는 작업은 캐내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 제한된 정보로만 존재했고, 오프라인 공간에서 우연처럼 마주한 파프의 옷도 설립자의 드문 이력과는 상반되게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먼 이국 브랜드 중 하나처럼 보여서 데면데면 스친 면도 컸다. 물론 이러한 나의 선입견과 관계없이 파프가 선보인 작업은 언제 어디에 있든 그 출신이 모호했고, 제품과 룩은 늘 첫인상처럼 형형하고, 간명했다.

 

 

파프의 공동설립자이면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임동준은 브랜드의 존재감에서 느껴지는 해외에서 쌓은 자기 기반 사례가 없다. 하물며 그는 업계 인재상(人材像)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면 자연히 겹치는 패션으로 무언가를 몽상해 본 경험마저 없었다. 그저 플라스틱 합성수지로 만들어진 블록을 서로 이가 맞는 부분끼리 결합하고, 떼어내는 과정에서 원하는 결과에 도달해 나가는 레고 조립에 빠져 지내던 소년이었다. 그렇게 그의 미래 역시, 레고와 근접한 거리에서 직업을 가지는 것이 유년 시절 꿈이라면 꿈이었고, 목표라면 목표였다. 그런 은둔함과 함께 무언가에 깊이 빠져 지내던 십 대 소년에게 패션이 들어설 자리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임동준이 자신의 첫 진로를 산업디자이너로 선택한 건 지금 그의 삶과 잇대어 서로 대치되거나 허황하여 보이지 않고, 제 나이 또래에 걸맞는 합리적이고 도전적인 선택처럼 보여서 이해하기 쉽다.

그렇게 한국인의 보편적인 삶의 경로로 진학한 대학 생활에는 새로운 학업과 환경 그리고 학창 시절과는 다른 주도적인 표현 방식을 가진 또래 친구들의 다양한 삶과 취향이 푸르게 모여 있었다. 당연히 패션도 그 안에서 사람을 비추는 색다른 존재감으로 기능했을 것이고, 누군가의 시작처럼 대학생 임동준의 꿈틀거리는 시작도 그런 환경에서 조금씩 팽창해 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시에 보고 느꼈던 또래 친구들에 대한 기억과 거기서 비롯된 각성들이 오늘날 포스트아카이브 팩션의 상징적 얼굴이나 외적인 발상의 출발점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보단 레고를 다루면서 자연스레 물성을 이해한 감각이 오늘날 옷과 장신구를 하나에 오브제로 다루게 된 삶과 자연히 포개어지듯이, 당시 새로운 환경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경험하고, 보았던 세상도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전 가치와 가능성으로 그의 젊음을 분주히 부추겼을 것이고, 그것이 오늘날 포스트아카이브 펙션의 무른 시작이나 계기가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패션브랜드가 만드는 공산품은 회화가 바탕이 된 미술품이나 각종 조형 예술품들처럼 상징 차원과 물질 차원이 꼭 나란하진 않아서 겉으로 보이는 미적 호화와 고고함 뒤편으로 늘 시장성이라는 불확실한 숙제를 안고 시름해 왔다. 특히 파프처럼 설립자가 총괄하는 브랜드의 경우 그 시름의 깊이 또한 깊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현상으로부터 자생력을 마련하고자 선대 브랜드들이 고안해 내 현대에도 빈번하게 쓰이는 방법으로 메인 레이블에서 제시하는 고급 취향을 위시한 진보적인 시도와 소위 명예로운 고립’(Splendid isolation)처럼 보이는 작업은 꾸준히 선보이면서 여기에 비교적 느슨하고, 일상 친화적인 디자인의 제품들을 추가해 보다 불특정 다수를 소비자로 염두에 둔 전략과 손을 잡는 형태의 방법이 있다. 그리고 이런 대의적 명분을 소비자들에게 최대한 설득력 있는 구색으로 내세우기 위해 대부분의 브랜드들은 세컨드레이블이라는 명칭으로 제품을 출시하거나 데님(denim)이나 진(jeans) 같은 캐쥬얼에 대한 어느 정도 보편적 합의가 이루어진 영역을 메인 레이블의 배다른 형제처럼 만들어 새로운 라인으로 출시하고, 여기에 확산성과 연속성을 기대하며 브랜드를 향한 보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운영 방안을 구축해 나간다. 우리가 지금 떠올리는 높다란 지명도를 얻은 패션브랜드의 경우도 대부분 대동소이하다. 물론 주력으로 출시하는 제품의 결이나 세컨드 레이블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브랜드의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선 기존 소비자들에게 빈축을 사거나 초심 (初心)을 잃었다는 평가가 뒤따르기도 하지만, 팽팽함과 느슨함 사이 균형을 저마다의 흥미로 만들어 왔기에 일상 안에서 패션과 브랜드의 동행도 꾸준히 유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때론 평이한 시도에 너무 도취한 나머지 메인 레이블에서 추구해 온 곧은 방향성을 잃고 서브 레이블의 지나치게 의존한다거나, 그 방향 그대로 치우쳐져서 과거와는 다른 세속적이고, 물러진 브랜드로 변모한 사례들도 많이 보았다. 임동준은 패션브랜드의 이러한 명과 암을 최대한 부정적 견해 없이 받아들이고, 선대의 방법론에 부드럽게 기대면서 소비자들을 서로 분리된 이해관계에 빠뜨리지 않는 자신만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브랜드의 시작 단계부터 적용해 포스트아카이브라는 브랜드를 줄곧 흥미로운 방식으로 이끌고, 만들어왔다.

 

지난 2018년도 가을/겨울 시즌 1.0 컬렉션을 시작으로 8.0까지 이어진 시기와 계절을 나타내는 동의어 대신 자신들만의 표기법인 숫자로 명시해 온 파프의 컬렉션은 마니아층이 공고한 패션브랜드가 으레 그러하듯 누구나 수긍할 만큼 진일보 적이고, 명확한 구조의 의외성을 띤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들은 소비자가 브랜드를 상징화하고, 긍지로 받아들이는 핵심적인 요소로 남는다. 오늘날 파프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다만 여기에 좀 더 폭 넓은 시장성에 기댄 비교적 유순한 형태에 제품들도 균형 있게 포개어져 있다. 가령 기하학적인 그래픽이 들어간 헐렁한 실루엣에 티셔츠나, 특정 시기에 만들어진 상징적인 협업과 브랜드의 기념비적인 순간을 간결하고 명료하게 새긴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의 볼캡이 대표적이다.

 

파프에서 출시하는 모든 제품들 내부에는 레프트, 센터, 라이트(Left, Center, Right)로 병기한 세 가지 분류법이 보인다. 여기에 간단한 설명을 보태자면 컬렉션에 중심을 이루는 신묘한 조형미와 심도 있는 연구가 들어간 패턴의 제품들로 구성된 Left, 보다 일상 친화적인 디자인으로 불특정 다수와 시장을 헤아린 Right, LeftRight 양쪽의 장점과 가치를 균형 있게 버무려 만드는 Center로 각각 설명이 가능하다. 물론 이것 또한 상업적 방향과 조형적 실험을 균형 있게 궁리한 장치이긴 하겠으나, 파프가 제안한 세 가지 방향엔 세컨드 레이블처럼 자연히 갈라지는 상징적 느슨함이나 확연히 드러나는 가치 차등 구조가 먼저 떠오르진 않는다. 가치 판단은 오로지 소비자의 몫으로 두고, 보편성에 기울인 높낮이가 아닌 평평한 세 가지 방향만 제시할 뿐이다. 그 세 가지 방향 모두 파프가 추구하는 조형적 실험과 아름다움을 크든 작든 지니고 있고, 평지에서 갈라져 포스트아카이브라는 하나의 출구로 시장에 나온다. 그래서 소비자들도 상징 차원에서 다층적 구조가 주는 각기 다른 이분법에 빠지지 않고, 브랜드가 제시한 세 가지 경로 모두 하나의 긍지로 소비하고, 집단처럼 즐기는 인상이 짙다.

 

패션은 새롭고, 신선하다는 말에 쉽게 고무된다. 물론 새로움과 변화에 대한 갈망은 다가올 경향에 원류가 되거나, 높다란 미의 성취를 이루는 토대가 되기도 하지만 더러 새로움과 변화 그 자체에 빠져서 난해한 결과를 낳거나 퇴행처럼 보이는 반례도 많다. 그래서 새로움이나 변화에 대한 갈망은 패션브랜드에게 꼭 성공을 보장하는 마법 지팡이로만 쓰이진 않는다. 파프는 작업 방식과 결과물에 있어서 데뷔 때나 지금이나 늘 현대적이면서 신선한 느낌을 주는 브랜드다. 하지만 파프의 작업에는 컬렉션마다 바뀌는 다면적인 주제의식이나 변화나 변신 같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상징성 같은데 가치를 둔 흔적이 없다. 물론 만드는 사람의 사적인 경험과 시제품 단계에서 무수한 생각의 경로를 통하긴 하지만 결국 파프의 첨단은 파프의 시작이나 과거 안에서 덧입혀지고, 벗겨진 결과다. 그 결과를 뒷받침하는 불규칙한 잔주름 기법과 비대칭 구조, 과감한 절개 방식, 생소한 듯 겹치거나 뒤틀린 형태, 군데군데 지퍼를 사용한 다채로운 주머니와 원단에 폭을 줄이고, 늘리는 스트링을 통한 실루엣과 형태에 폭넓은 변형, 인체에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형태를 고려해 원단에 구멍을 낸 레이저 커팅 기술 같은 부분은 모두 지난 계절에 잇대어 거듭 보완 되거나, 이따금 새로운 아이디어로 덧대어져, 오늘날 브랜드의 상징성과 지속성을 잇는 유기적인 요소로 아이코닉한 기능을 해왔다. 마치 한번 혁신을 이룬 익숙한 전자제품의 신제품 출시 사례처럼 지난 컬렉션과 교차하여 연속성을 만드는 구조가 새로운 컬렉션과 신제품에 항상 연동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 구조는 앞에서 언급한 컬렉션의 표기 방식을 시기와 계절을 나타내는 공용어 대신 자신들만의 표기법인 숫자로 명시해 온 부분과 나란히 포개진다. 한 단위씩 높아진 숫자만큼 파프의 컬렉션도 완성에서 기워낸 더 나은 완성을 추구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 지금에 모습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자신이 만든 계절을 금방 낡게 만드는 패션 컬렉션의 기민한 특징과는 자연히 멀어졌다. 대신 발전이라는 더뎌 보이는 덕목을 브랜드에 현재와 비전으로 꾸준히 쌓았고, 여기에 패션이 공산품으로써 지니는 일상적인 존재가치와 브랜드의 정체성을 고취시키는 신묘함을 서로 깍지 낀 모습으로 만들어, 컬렉션을 항상 진일보한 방식으로 갱신시켜 왔다.

 

물론 이런 파프의 컬렉션을 보며 스탠다드의 끊임없는 변주라고 난색을 표하는 사람들도 간혹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오늘날 우리가 동경하고, 패션 그 자체를 고귀함으로 여기게 만들던 많은 고등 패션에 민낯들 역시 파프가 추구하는 가치 실현 방식과 견주어 마냥 홀가분하다 보긴 어렵다. 다시 말해 패션이 직조한 역사란 개인의 일상처럼 전통이나 시그니쳐란 말로 되풀이되는 무수한 반복에 역사에 더 가깝다. 물론 변화새로움이란 명제는 패션이 꾸준히 고민하고 추구해 나가야 할 창조 기반임엔 염연하나, 그만큼 적중률이 매우 낮은 격언이라는 사실도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 나 역시 사치가 추구해야 할 증명으로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 어제 내린 소비 결정이 내일 성급한 결론으로 변하는 물성에 대해 자본의 팽창을 견인한다는 의미에서 머리로는 수긍하지만, 내적으론 그러한 개념에 점차 고개를 저었다. 그보단 자신들이 쌓아 올린 층위를 연속성 있게 정리해 보여주는 브랜드와 제품에 훨씬 더 공감하고 끌렸다. 파프의 컬렉션을 보며 느꼈던 감흥도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파프의 컬렉션이 예사로웠단 말은 결코 아니다. 물론 동어반복의 창조 기조가 브랜드의 지속성을 떠받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런 기조가 머문 자리엔 늘 자의식이 강한 고급 기성복 브랜드에서나 시도할 법한 정교한 엇박자와 가늠할 수 없는 이채로운 조화가 혼재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는 오래된 패션의 어법으로 비추어 볼 때, 익숙한 일상복의 형태에 해체주의의 방점을 두고 분칠한 결과로 보인다. 다만 그 분칠이 불연속적이지 않고, 레고 블록처럼 충충히 동일한 원리로 쌓은 작은 산처럼 보여서 마음이 갔다. 시시각각 정서와 주제에 대해 우연하고, 가볍게 스치거나, 무수하게 잊어버림을 권유하는 건물들이 아닌 한 가지 방향으로 우직하게 쌓아 올린 산 같았다고 할까? 그래서 해체주의의 실험적 성취가 형태에 따라서 낯설게 보인다 해도 결국 난해하게 남지 않고, 시간을 통해 쌓은 합리성처럼 남아서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었다. 물론 거기엔 임동준이 개인을 넘어서 해왔던 세계 각국의 패션브랜드에 동향 파악과 패션에 대한 꾸준한 궁리와 공부도 큰 몫을 차지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패션에 창조 기반이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진리에 가까운 해답도 수렴했을 것이고, 모든 것은 변주이며, 과거에 기대어 있지만, 그걸 인정하고 보완하며, 개인으로써 조금씩 바꿔 나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패션은 의미 있게 이어지고, 새롭게 남는다는 개념에도 지혜롭게 다가서지 않았을까?

담담하고 일목요연하게 나열된 파프의 최신 컬렉션과 그에 곁들여진 제품 설명들을 보면서 취향의 논의를 벗어나 마음이 한결 편안했던 건, 유행처럼 번져 쉬이 보이는 실루엣과 정서에 대한 강박이나 과잉에서 오는 피로감 같은 게 없어서였다. 물론 일상복을 분해하고, 재구축해 만들어 낸 가치는 패션의 원류를 뒤따르지만, 그럼에도 파프가 선보인 제품에는 늘 처음 보는듯한 신선함과 독자적인 조형미가 있었다. 아마도 그건 파프가 만든 제품 중심에 옷을 입는 대상이나 현상이 아닌 옷 그 자체로 주는 빛과 생동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겐 그것이 완전한 개인으로써 브랜드를 내세우지 않고, 다음 세대를 위한 아카이브란 명제로 익명성을 내세운 브랜드의 상징적 뒷배처럼 보여서 마음이 갔다.

 

 

 

이렇듯 새로운 것과 존재하는 것 모두 의미가 있다. 완전한 개인이건 아니건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세상을 꾸준히 믿고, 쌓아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오늘날 패션과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가장 적중률 높은 격언은 아닐까?

그렇게 변화보다 성장이 더 아름다운 생명충동인 이유가 파프의 컬렉션에 있다.

내가 그들의 다음 숫자를 기대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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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mut Lang  

 지난 2004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의 가치와 영향력이 대외적으로 정점에 이르렀을 때, 브랜드의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프라다 그룹의 설립자로서 자신이 가진 모든 지위와 지분을 매각하고, 브랜드의 모든 권리와 미래를 위임하며, 그 길로 패션계를 완전히 떠나 현직 예술가의 삶을 살고 있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출신에 전직 패션디자이너 헬무트 랑은 오늘날 20세기 끄트머리를 경이 하는 많은 패션디자이너에게 가장 듬쑥한 메아리를 얻고 있는 인물이다. 그만큼 패션 디자이너로써 그가 남긴 과거는 시간에 박제되어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은퇴 후에도 현대에 무수한 표준들을 떠받치는 그림자로 남아, 우리의 삶 속의 알게 모르게 존재해 왔다. 그리고 지금껏 우리는 관습적으로 이러한 그림자들을 '미니멀리즘<최소주의>'이라 부르며 상징해 왔다. 하지만 오늘날 패션디자이너로서 헬무트 랑의 이름을 '미니멀리즘'이란 한정된 양식으로 가두기엔 그가 만들어 낸 세계는 훨씬 더 광대해 보인다. 물론 1990년대 패션계를 상징하는 가장 높다라한 위치에 그의 이름이 있고, 미니멀리즘이 당시 급변한 소비문화와 시대 분위기를 헬무트 랑의 이름과 이어주는 핵심 연료임은 염연하나, 패션디자이너로서 그가 선보인 미학과 방식은 제품 안과 밖으로 보다 간결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리멀리즘의 갈래에서는 선뜻 떠올리기 어려운 난해한 요소들이 많았다.

 먼저 남성복 역사에 거대 단편 중 하나인 밀리터리<군용>장식과 아웃도어 이전에 일상복의 가장 두드러진 등장으로 보이는 스포츠의류의 각각 펑크 문화를 상징하는 가장 본질적 요소인 본디지 장식을 세부 구성으로 얹어, 펑크가

본연의 영역 외에 일상복의 기능으로써 패션의 범주에 자연스럽게 머물 수 있도록 신선하고, 세속적인 섞임을 이루어 냈다.

 


 또한 그는 고급 기성복 브랜드가 지닌 데님의 잠재성을 가장 먼저 인식한 디자이너이기도 했다. 헬무트 랭의 데님에는 오리지널리티를 과시하는 현란한 가공도 없었고, 스티치로 판별하는 계단이나 브랜드의 서명이 들어간 고고한 외부 장식도 없었다. 그저 자신이 유년 시절 리바이스에게 빚진 일상복의 감수성과 캘리포니아의 오래된 향기를 한결 정돈된 느낌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데님들은 작업복의 어원을 부드럽게 따르면서 새로운 오피스웨어라고 해도 나무랄 데 없을 만큼 몸을 타고 흐르는 가느다란 실루엣은 유순하고, 아름다웠다. 그 안에서 입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깔밋한 맵시와 꼼꼼한 세공은 과거를 기워낸 완전한 유니폼이라는 말의 가장 가깝게 남았다. 물론 오래된 화법 사이로 이채로운 귓속말들도 많이 남겼다. 대표적으로 1998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그는 당시 패션계가 요구한 기발한 연출이나 환상 없이도 새로움을 선언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사례를 보여주었다. 누구에게나 나이 든 살갗의 기호인 주름이 생기듯이 데님은 익어가는 매력을 지닌 옷이다. 헬무트 랭은 데님의 이러한 물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 디자이너였으며, 이것을 ‘자연스러움’이란 이데올로기로 궁리해 만들 줄 아는 디자이너였다.

카키색 진흙 가공을 자연스럽게 입힌 데님 셋업이나 검정과 하얀색을 띠는 고무와 유사한 재질의 소재를 오묘하게 가공된 푸른 데님에 흩뿌리듯 붙여 만든 페인터 데님은 패션 디자이너로서 그가 만들어 낸 세기말의 걸작 가운데 하나이면서, 오늘날 시간에 더께를 입힌 낡은 청바지를 선망하는 가장 아름다운 표본으로 현대에 남았다.

 컬렉션의 성취 바깥에서도 그의 페인터 청바지는 특별한 방식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그래픽 디자이너 Peter Saville가 총괄하고, 유르겐텔러<Juergen Teller>가 사진 작업을 맡은 뉴오더<new Order>의 2001년 앨범 'Get Ready'의 커버 사진은 독일 출신의 영화배우 Nicolette Krebitz가 헬무트 랑의 페인터 청바지를 입고, 일본 기업인 SONY사의 캠코더를 들여다보며, 한쪽 눈을 가린 채 공허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흑백 사진과 함께 세상에 나왔다. 이 사진에서 헬무트 랭의 의상을 입은 Nicolette Krebitz의 모습은 그들의 음악을 세상에 소개하는 시각적 안내서로 부족함이 없었다. 비록 그 안에는 음악가를 예술가로서 조명하는 사치스러운 기예나 화려함은 없었었지만, 당대의 그래픽디자이너가 단호하게 그어 놓은 빨간 선이 그의 컬렉션의 어떤 지점과 연동되는 것처럼 헬무트 랭의 옷 역시 음악과 패션을 시각적으로 연동시키는 상징적 도구로써 독자적이고, 긴요한 몫을 충분히 해냈다.
 

 
 
 

 데님을 포함한 그의 옷과 장신구들은 오래된 고전의 걸터앉아 있으면서도 고급 기성복이 추구해야 할 현대적인 목표와 앞으로의 시대에 대한 일상복의 비전을 연이어 제시하고 만들어 냈다. 1995년 가을/겨울 컬렉션을 시작으로 오랜 시간 선보인 짧아진 몸통 길이와 잠금장치가 없는 소매가 가늘고 기다란 구조로 만들어진 데님재킷은 긴 팔을 한 뼘 정도 접어 입거나 있는 그대로 펼쳐 입을 수 있어서 새로운 범용성을 가진 데님재킷처럼 보였다. 2003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선보인 한쪽 소매를 가죽 소재로 전환한 비대칭 구조의 데님재킷은 원단의 끝처리를 일부러 거칠게 가공하여, 유사한 성질을 지닌 서로 다른 직물이 주는 혼합된 느낌을 갈라진 콘크리트 같은 차분한 조형미로 만들어 보여주기도 했다. 이처럼 기본에 충실하면서 새로움을 꾀한 그의 데님은

‘부드러운 작업복’이라는 명제로 현대에 남았다.
 
  필자는 오래전 블로그에 그가 만든 데님을 '리바이스의 제국주의를 아름답게 허문 옷'이라고 말한 기억이 있다. 지금도 이 생각은 유효하다. 오히려 그런 조용한 시도들이 훗날 데님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브랜드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 모델이 되었고, 앞선 과거에 현대적 고전으로 남았다고 생각한다.

 옷과 장신구를 만드는 데 있어서 그의 안목과 미학엔 남다른 시야와 지혜가 있었다. 그는 아무도 관심 두지 않던 일상 속 쓰임들을 독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자신만의 참신한 아이디어로 삼았다. 화재 현장에서 소방복을 착용하는 소방관들의 안전을 위해 만들어진 산업용 반사판 줄무늬를 딱딱한 데님과 부드러운 코트, 매끈한 테일러드 재킷에 본래의 기능과는 전혀 관계없는 색다른 시인성으로 반영해 자신만의 옷을 만들 줄 알았고, 현장 업무를 수행하는 경찰들의 안전을 위해 만들어진 방탄조끼는 거위 털 충전재를 사용해 계절을 반영한 보온 기능을 지닌 옷으로 부드러운 슬랙스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미래의 작업복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용의자들의 손목을 결박하는 도구로 만들어진 수갑을 꼼꼼한 세공을 통해 팔찌로 만든 사례는 아무도 ‘패션’의 범주에서 쓰임을 발견하지 못한 소재에 새로운 가능성을 느낀 헬무트 랭만의 차갑고 부드러운 사고가 빛을 발한 작품이었다.


 물론 구조적으로 잘 만들어진 군용 파카와 작업복들은 그가 만들어 낸 미니멀한 작업의 정교한 앞면이었지만, 내부에 달린 단순한 어깨끈 하나만으로 ‘천사’ 와 ‘우주’ 같은 아름다운 환상을 떠올리게 하는 힘은 헬무트 랭만이 지닌 새뜻한 창조의 뒷면이기도 했다. 그는 클럽 문화와 테크노 음악을 새로운 직물로 표현할 줄 아는 디자이너였으며, 오랜 세월 패션계가 세우고, 무너뜨린 성별에 대한 경계를 누구보다 유순한 방식으로 허문 디자이너이기도 했다.

 이렇듯 잘 만들어진 공산품으로써 브랜드를 빛나게 지었던 그의 재능은 브랜드를 소개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탁월한 감각을 보였다. 1997년 고향이면서 주거지였던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떠나 미국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브랜드의 거점도 프랑스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긴 그는 곧 뉴욕에서 선보일 자신의 컬렉션을 알리는 목적으로 도시의 상징과도 같은 실제로 운행 중인 노란 택시 표지판에 ‘HEMUT LANG’ 서명이 들어간 브랜드의 로고를 특유의 폰트로 새겨 넣고, 실시간으로 뉴욕 도시 전역을 주행하는 광고 방식을 추진했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간을 점유하여 겉보기엔 휘황해 보이지만 능동성은 부족해 보였던 기존 광고방식들과는 다른 자유로운 공간감과 생기가 있었고,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 풍경에 흔한 캠페인 사진 한 장 없이 그가 만든 공산품들처럼 단출한 내용과 사고의 변화만으로 깊은 인상을 심어준 광고 사례로 남았다.

 뿐만 아니라 패션쇼 백스테이지 사진에 대한 기능을 분주한 내부적 기록으로만 남겨 두지 않고, 브랜드를 상징하는 기록으로 외부에 더 너르게 내세운 것도 헬무트랑 이기에 사고할 수 있는 탁월한 쓰임이었고, 지혜였다.
 

  사실 현대의 시각으로 반추해 보면 그가 만들어 낸 시대와 패션은 머리카락이 쭈뼛 설만큼 놀라운 미학이라고 보긴 어려울지도 모른다. 고전으로 전해지는 방식도 가시적인 실루엣과 정서로 회자 되는 느낌 역시 드물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이 여전히 유요한 의미로 사람들에게 듬쑥한 메아리를 얻고 있는 이유는 그가 지은 패션이 고전이 잇대어진 가장 간명하고, 아름다운 패션이기 때문이고, 그것이 오직 현실에서 고안해 낸 도회풍이 깃든 패션이라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그는 현대를 만들면서 미래를 보여주었고, 그곳이 도시라면 어디든 어떤 지명을 넣어도 존재할 수 있는 패션을 만들었다. 나는 이것이 ‘미니멀리즘’이란 명제보다 현대에 더 가까운 미학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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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injunho
Journal2022. 12. 12. 15:58

 

thank you RAF SIMONS

 

돌연 27년이란 세월에 마침표를 찍은 지금도 이토록 휘황하다니, 그가 남성복을 통해 이룬 아스라한 경지는 앞으로 후대에도 줄곧 바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저에겐 다른 브랜드의 옷과 장신구를 더듬을 때도 그가 만들어낸 공산품을 염두에 두고, 지혜를 서성이던 기억이 많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아쉬움도 크지만, 마지막까지 브랜드를 재화로 매각하지 않고, 외부에 위임하지 않는 것으로 설립자가 통제할 수 있는 가장 헌결찬 선택을 한 부분에 대해 팬으로서 작은 경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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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2022. 6. 23. 18:25

balenciaga - aoyama <cut up>capsule collection



 생각해보면 옷에 대해 어섯눈을 겨우 뜬 푸르른 시절부터 스웨트셔츠<SweatShirt>를 좋아했다. 물론 운동복의 실용적 대안으로 등장했던 과거의 지혜와 자신이 소속된 대학의 명칭을 자부심처럼 드러낸 고전적 기능이 오늘날 일상복의 보편적 영역을 이룬 밑절미란 사실엔 굳건하지만, 굽어지고, 휘어져 겨우 찾아낸 내 알량한 심미안은 언제나 그렇듯 보편적 감수성보단 좀 더 견결하고, 얄궂었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전임 디자이너의 환상을 산산이 조각내며, 거리문화가 낳은 럭셔리 하우스의 새로운 총아처럼 등장한 뎀나바잘리아<DemnaGvasalia>가 지휘하는 발렌시아가<Baleciaga>는 자신에게 깊다란 인상을 남긴 1990년대 끝머리와 2000년대 첫머리 패션에 헌정하는 경향이 가장 두드러진 성공사례라 할만하다. 물론 항공모함 같은 운동화와 기념품처럼 너르게 번진 발렌시아가의 다변화된 로고가 새겨진 제품들은 몇 번의 계절을 지나오는 동안 분명 한풀 꺾인 추세지만, 그럼에도 오늘날 스웨트셔츠를 주류문화에 편입시키며, 한 움큼 듬쑥한 현상을 만든데 자연스레 그의 얼굴이 겹쳐짐은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정서나 감각의 깊이에서 선대 디자이너들에게 빚진 인상을 줌은 엄연하나 패션에서 그것이 꼭 시장에 성취와 나란한 것은 아니기에 나 역시 그의 행보에 반감 보단 호의적인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최근 몇 번에 계절을 지나오는 동안 현실에서 멀어진 제안을 하는 꾸띄르 컬렉션 정도를 제외하면 그가 만드는 발렌시아가는 나에게 그저 심드렁한 브랜드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지난 2020년 끝머리에 일본 도쿄<Tokyo> 아오야마<Aoyama> 지역에 위치한 발렌시아가 플래그쉽<flagship> 스토어 리뉴얼 기념으로 출시한 후드 파카<hood parka>는.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갖고 싶은 제품으로 남아있다. 당시 ‘cut up’ 이라는 캡슐 컬렉션 주제에 걸맞게 각기 다른 원단을 세로로 이어 붙여 만든 옷들이 구성에 전부였는데, 특유의 치밀하게 설계된 엉성함이 인상적 이었다. 특히 뎀나바잘리아가 그간 발렌시아가에서 선보인 로고 작업의 두드러진 몇 가지 형태들을 조합해 들쑥날쑥하게 이어 붙인 저마다의 원단들과 조화시킨 부분이 깔밋하지 않고, 색달라서 마음에 들었다. 갈수록 거리문화를 염두한 많은 패션 브랜드의 결론이 일종에 자기계발서처럼 최초의 발견 당시에 기분을 그리 오래 전하지 못하는 느낌이 짙다. 여기에는 경향이나 시장의 문제도 있겠지만, 창조와 기획을 비슷한 역량으로 생각하는 사례도 많아 보인다. 무조건 소비자보다 앞선 경향을 만들며, 높은 기술과 고품질의 소재를 사용해 만든 제품을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저, 과거와 현재 미래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브랜드 고유의 새로움을 제시하는 것, 거기에 살롱 문화와 거리문화 사이에 간극이란 크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 마음으로 제품을 만드는 기성복 브랜드를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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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injunho
Journal2022. 5. 24. 19:41

Thom Browne

지금도 사치에 경연장인 백화점 명품관에 들어서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완미한 디스플레이와는 달리 근래에 공공의 광장에선 마치 쇠락한 럭셔리 브랜드의 전형처럼 보이며, 짙든 옅든 특정 대상을 향한 상반된 역설로 희화되어, 뜻밖에 빈축을 사고 있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톰브라운이다.

하지만 흘러간 동시대에 시간을 조금만 물려 반추해보면, 21세기 남성복 흐름에서 그의 등장이 얼마나 새뜻했는지 확인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는 한동안 남성복 시장에서 고지식한 지표처럼 보였던 오피스 장식에 외피를 두른 고전적인 남성 수트를 가져와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의 모태로 삼고, 기존에 없던 이채로운 방식으로 재구축해 훗날 이것을 패션 시장 전반을 주도할 새로운 아이디어와 경향으로 이끈 대표적인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의 등장 이전에 남성 수트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은 고요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옷을 입는 사람도 과거에 비해 줄어든 추세였고, ‘신사’ 보다는 ‘남성’의 범주에서 ‘소년’ 같은 푸르른 말들이 날카로이 애호 받던 시대였다. 당시 일상에서 떠오른 수트에 낯익은 모습이라 해봐야 금융업을 포함한 행정 사무관리직과 세일즈맨을 비롯한 대다수의 회사원들이 갖춰야 할 신뢰와 용모단정의 기준이 되는 유니폼과 같은 잔상들이 낡은 사회를 대변하는 거울로 근근이 남아 있을 뿐이었었다. 물론 국회의원을 비롯한 중차대한 나랏일을 수행하는 대표 인력과 변호사처럼 수트가 법복에 다른 얼굴로 존재하며 유니폼과 같은 기능을 하는 특정 사례는 여전히 건재 했지만, 선망하는 ceo의 본보기도 외적으로 한결 편안하게 재편된 마당에 역사와 상징성만큼 자발적인 표현의 도구가
되거나 도드라진 개인의 개성이 얼굴처럼 드러나 넓게 번진 옷은 결코 아니었다. 그래도 빛나는 섬처럼 일부 멋쟁이들 사이에선 직물이 가져다주는 즈런즈런함과 착용자의 몸에 맞춰 정교하게 재단된 감각을 남성이 추구해야 할 매너와 미학에 종착지처럼 여기는 풍경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곡진함만으론 개성보단 계층과 연령을 들어내는 특유의 높다라함과 경직된 사회적 무늬를 허물긴 어려웠다. 그러니 사시사철 급변하는 경향이나 디자이너의 신(新)사고를 포개기엔 아름다움에 대한 고전적 더께만큼이나 정서를 허무는 시도에 대한 반감도 큰 옷이었다.

지난 2001년 톰브라운이 지금에 그를 알린 회색 수트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매장에 조용히 문을 열었을 때, 그가 만든 옷에 주목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입어본 사람만이 체험할 수 있는 신묘한 미학과 파격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옷을 세간에 관심과 논란의 대상으로 바꿔놓았다.
예로부터 양립되는 의견 사이 크고 작은 갈등마다 모호함을 대변하는 의미로 쓰여 온 회색을 기본색상으로 선보인 그의 옷은 한눈에 보기에도 기존 테일러드링(tailoring)에 기반을 둔 클래식(classic) & 헤리티지(Heritage) 브랜드들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몸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란 전혀 없는 비범한 크기의 회색 재킷은 소매가 셔츠 커프스를 반도 덮지 못할 만큼 짧았고, 앞부분에 세 개의 단추를 모두 채우면 좁고 아담한 라펠이 수줍게 보인다. 재킷의 길이는 엉덩이가 아닌 허리 위치에 겨우 머물러 있고, 주름 장식이 없는 단정한 바지는 신체 성장기에 미래를 잘못 예측하고 수선한 교복 바지 마냥 복사뼈가 훤히 보일 만큼 짧은 길이를 고수하고 있다. 여기에 신발은 항상 톰브라운 하면 떠오르는 도톰한 윙팁 가죽 구두가 신겨져 있어, 아빠 신발을 몰래 신고 나온 어린아이처럼 개구지고, 도드라져 보인다. 자연스럽게 몸에 감기는 실루엣이 인상적인 톰브라운의 옥스퍼드 셔츠는 수축된 실크처럼 항상 작은 형태를 고수하고 있고, 이젠 누구나 브랜드의 상징처럼 떠올리는 세 가지 색상 (파란, 빨간, 하얀색) 줄무늬를 재킷 소맷단과 셔츠 가슴 위치에 자리한 단추를 자연스레 풀면 보이도록 숨겨둔 부분과 편지 봉투처럼 다정하고 명확하게 디자이너의 서명과 사이즈를 표기해둔 부분은 이후 아메리칸 클래식과 스포츠웨어를 모방하며 생겨난 많은 브랜드에서 차용한 톰브라운만의 유머와 사치가 깃든 알아보기 쉬운 장식이었다. 여기에 상질의 캐시미어 원단을 사용해 만든 길이가 짧은 정사각형 형태에 카디건은 수트를 중심에 두고, 발전해온 브랜드에선 오랜 시간 지속성을 가지고 선보이기엔 드문 종류의 옷이었다.
무엇보다 톰브라운이 만든 옷에는 기성세대에 대한 옹호와 역설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에게 색다른 호응을 얻었다. 그는 남성복의 고고한 전통성을 떠받치면서 여기에 누구나 놀랄만한 이채로운 분칠을 칠했다. 하지만 선대 디자이너들처럼 도시 남성의 관능미를 통해 아찔함을 넘나든다거나 하위문화를 섞어 오로지 세대와 계층 안에서만 짙어진 정서를 연료로 삼진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톰브라운이 만든 남성 수트에는 ‘남자답다’라는 형용사를 정서적으로 무기력하게 만드는 쾌감이 있었다. 반면에 생산거점을 일본으로 틀기 전 만들어진 초창기에 그의 옷들은 까다로운 헨드테일러링 방식을 고수하며, 맞춤복에 뿌리를 둔 신사복의 오래된 생산방식을 따랐다. 하지만 착용자의 체형과 일상에 자연스러움을 고려하여 만드는 기존 맞춤복에 밀착된 서비스 방식과 친절한 세공은 그의 옷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신 톰브라운이 만든 옷에는 기존 맞춤복에 손길에선 체험하기 힘든 과감한 실루엣에서 드러나는 디자이너의 신(新)사고와 유머가 있었다. 좁은 라펠과 주름 장식이 없고, 길이가 짧은 형태에 옷은 설핏 1960년대 남성 수트를 연상시키지만, 그는 여기에 패션 디자이너로서 자신이 추구한 곧은 자아와 신체를 구속하는 대담성을 곁들였다. 다시 말해 그는 소비자의 몸의 옷을 맞추지 않고, 자신의 옷의 몸을 맞추도록 주도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비스포크 방식을 선호하는 열혈 애호가 사이에선 다소 설은 느낌을 주었을지 모르지만, 첨단과 경향에 예민한 고급기성복 문화엔 낯선 만큼 빠르게 흡수 되어 갔다.

 


매장에 정갈하게 디스플레이된 톰브라운의 옷들은 대부분 고품질에 유서 깊은 직물을 사용해 만들어진 탓에 흘긋 보기엔 전통성을 잇는 숭고한 옷처럼 보인다. 하지만 직접 다가가 만져 보고, 입어 보면 뜻밖에 생기가 주는 놀라운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
매번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유머와 풍자가 깃든 이채로운 미학들로 서커스장을 방불케 하는 톰브라운의 컬렉션 무대는 유년 시절 수영선수였던 그의 드문 이력에서 비롯된 스포츠의류가 주는 활동적이고 경쾌한 에너지와 여성복이 가진 극적인 아이디어가 동시다발적으로 공존한다. 그렇게 서로 다른 문화가 포개질 때 생겨나는 아름다운 혼선과 파장들을 자신이 만든 독자적인 오피스룩에 무람없이 반영하고, 이것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치로써 컬렉션 무대를 활용해왔다. 가령 가터벨트로 고정된 양말, 속살이 훤히 비치는 바지, 서스펜더가 달린 치마, 양털로 파이핑 된 턱시도 재킷, 두 사람이 각자의 다리를 욱여넣은 하나에 바지, 골반을 한참 지나쳐 허벅지까지 내려 입은 바지, 셔츠 소맷단럼 단추로 크기를 조정하는 모자와 바지 밑단, 거칠게 가공된 상질에 헤리스 트위드 원단에 스터드를 촘촘히 박아 만든 수트, 점프수트처럼 반바지를 붙여 만든 구조에 테일러드 재킷, 조개껍데기가 촘촘히 박힌 듯한 서류 가방, 종이옷처럼 장미 장식으로 옷 전체를 부풀린 수트 그리고 비록 지금은 역사에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첨단사고와 오래된 전문기술에 가장 이상적 만남 중 하나로 꼽혔던 몽클리어와 톰브라운의 조우에 초석이 된 누빔 다운 재킷과 테일러드재킷의 결합 같은 새뜻한 시도들이 희지도 검지도 않은 그의 수트의 창조적 뒷면으로 남아, 뉴욕의 비지니스맨과 피티워모의 멋쟁이 신사들은 물론 새로운 패션에 혈안이 된 런던과 아시아 각지의 소년들에게까지 신선한 매력을 양산하며, 당시 남성복 시장에서 보기 드문 입지와 신기원을 이뤄냈다. 이후 톰브라운은 상업성과 실리에 지향점을 두는 뉴욕패션위크를 벗어나, 파리 패션위크로 둥지를 옮겨 더욱 강도 높은 컬렉션을 선보였고, 여성복 컬렉션과 아동복에 이르기까지 브랜드의 구성을 가족 개념으로 너르게 확장하며, 오늘날 설립자가 지휘하는 브랜드가 오를 수 있는 사치에 새로운 수준을 보여주었다.

최근에 우연한 기회로 백화점 명품관에 들러 마주친 무수한 자본에 연산들 사이로 여전히 완미하게 진열된 그의 옷과 디스플레이를 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 또한 예전과는 자못 달라진 미묘한 마음을 느꼈다. 물론 이러한 변심과 이질감에 원천이 익히 경험해온 부침 많은 패션에 다른 얼굴이라 할지라도 그 민낯은 패션에 대한 그의 창조성의 쇠퇴와는 완전히 무관했다. 적어도 이날 내가 본 그의 옷과 장신구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너르고, 곧고, 이채로웠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쓴다. 과거 선대의 디자이너들이 '익숙한 대상에 대한 저항과 반론' 이란 의미로 성취한 '거장'이라는 수식어에 톰브라운<Thom Browne>의 비범한 시작과 여려 차례 컬렉션을 통해 선보인 강도 높은 파격, 다변화된 주제 의식 모두 그들과 근접한 뇌리에 있다는 사실이 엄연하다. 여전히 클래식 교향곡을 연주하며 디스코를 출 줄 아는 그의 휘어진 오피스를 지금 많은 이들이 느끼는 유감스러움과는 별개로 어디까지나 패션을 문화로 향유하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지지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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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질 아블로 Virgil Abloh 1980~2021>


어제 새벽 여느 때와 다름없이 뜬 눈으로 휴대폰의 차가운 화면을 무심히 내리던 중...
뜻 밖에 소식을 접했다.
다름 아닌 오프화이트<off white>의 설립자이면서, 루이비통<LOUIS VUITTON>의 남성복 아티스틱 디렉터를 겸하고 있는 버질아블로<Virgil Abloh>의 부고 소식이었다. 사인은 심혈관 육종 계열의 원인 모를 종양으로 인해 병마와 싸우다 지난 새벽 유명을 달리했다는 싸늘한 발표와 함께 아쉬운 추모글과 애도의 물결들이 연일 쏟아졌다.
물론 스스로 그의 이름을 '패션'이라는 범주에서 정서적으로 동경하고, 수집하며, 이끌린 기억은 없지만,
그가 '천재'라는 상찬의 말엔 늘 특별한 견해 없이 동의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세계관과 감각을 통해 서로 다른 집단과 분리된 이해관계를 하나로 뭉치게 하고, 매번 새로운 시도로 기존 대상을 해체시켰으며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선보이며, 사람들을 모으고, 공감하며, 열광케 했다. 그는 디자이너란 직업의 역할 범위를 가장 넓은 의미로 해석하고, 전파한 사람이었으며, 여태 내가 보았던 디자이너란 직업의 가장 미래적인 역할 모델이기도 했다.(이 사실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패션과 디자인에 영역을 일상 속 가장 친숙하고 익숙한 곳까지 침투시킬 줄 아는 정말 특수하고, 총체적인 재능을 가진 예술가였다.
아무쪼록 시대를 재단하고, 설득하고, 정의한 젋은 예술가의 짧은 생을 추모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부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선조들의 낡은 격언이 생전에 그가 남긴 업적들과 함께 패션, 디자인, 예술을 경계로 삶의 영역에서 공고하게 남아 오래도록 반추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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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astic Man What Men Wear and Why

<Fantastic Man What Men Wear and Why>는
 네덜란드에서 만들어지는 남성 패션지 판타스틱맨<Fantastic Man>과 영국 런던에 위치한 세계적인 패션 편집매장 브라운패션<brownsfashion>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이 책은 오늘날 남성복 스타일을 대변하는 저명한 인물 50인에게 '패션'이 아닌 '옷'에 대해 지정된 설문 안에서 묻고, 그렇게 나눈 대화 내용을 편집해서 지면으로 옮겨 엮어낸 책이다.
책에 실린 결과물의 대부분은 Fantastic Man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누구나 열람 할 수 있는 questionnaire 메뉴의 글들을 토대로 하고 있다. 
우선 내용에 앞서 책을 받아 들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 하나를 꼽자면 패션 관련 서적에서 흔히 보이는 화보나 광고 하나가 이 책엔 없다.
오로지 문자로만 이루어져 있다.
초 단위로 생산되는 이미지의 시대에 이런 시도를 하는 건 분명 '모험'일 수 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들이 선택한 모험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이 책에 실린 내용에는 환상이나 허구가 없다.
지금 사람들이 열광하는 급변하는 경향이나 패션의 현주소도 조명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독자들을 빠르게 매료시킬 만한 신진문물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여성복과 달리 현실감각에 기반을 두고 성장해온 남성복의 오래된 욕구를 50인이나 되는 다양한 전문가들의 사적인 고견을 통해 접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를테면 스테파노 필라티<Stefano Pilati>와 폴스미스<Paul Smith>가 자신들의 옷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닉 우스터닉 우스터<Nick Wooster>는 파란색 옥스퍼드 셔츠 (blue oxford shirt)가 자신에게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와 살면서 만난 가장 완벽한 파란색 옥스퍼드 셔츠에 대해 말한다.
유명한 모자 디자이너 스테판 존스<STEPHEN JONES>와 나눈 모자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 밖에도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자신의 스타일이 만들어진 배경과 쇼핑노하우를 비롯한  의복과 함께 살아가면서 자신이 실질적으로 겪은 희로애락(喜怒哀樂)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내용들은 Gert Jonkers와 Jop van Bennekom이 FANTASTIC MAN을 만들면서 지면을 통해 오랜 시간 문자를 다뤄온 내공과 시각적 스타일이 더해져 문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 모든 것들을 잡지에서 할애하는 일부 페이지가 아닌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과 오늘 날 잡지가 자신들의 아카이브를 의미 있게 다루는 방식, 디지털을 지면으로 옮기는 아름다운 방법 같은 것들이 책을 보는 내내 공감과 부러움을 사게 만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면을 통해 만나는 패션은 보이는 만큼 읽히는 건 줄어드는 시대라 말한다. 하지만 문자가 이미지의 기능을 대신할 수 없듯이 이미지 역시 문자의 기능을 대신하진 못한다. 패션 잡지를 실생활을 아름답게 재현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만들어온 그들의 이념이 앞으로도 더 많은 독자들에게 보이고 읽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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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2018. 5. 20. 21:15

RAF SIMONS

 

필자는 컬렉션 리뷰를 팬레터 형식으로 바꿔 쓸 만큼 그(라프시몬스)의 오랜 팬이다.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로 그를 꼽는 데에 추호의 의심도 없다. 패션디자이너에 대한 호기심이 낯선 과거, 무작정 서구문화에 대한 동경만이 마음속에 자리하던 당시에 우연한 기회로 접한 그의 초기 컬렉션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지금 확고해진 취향에 많은 부분은 이미 그때 완성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이켜 보면 라프시몬스가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로 갓 데뷔한 1995년은 남성복에 정서와 결이 지금처럼 다양한 시대는 아니었다. 1980년대 성행한 파워숄더재킷이 남성복 런웨이에 아직 등장하던 시대였고, 고급기성복과 스트리트웨어 사이에 경계도 그저 경계로만 존재하던 시절 이였다. 톰 포드<Tom Ford>가 구찌<GUCCI>에서 만든 상질에 턱시도 재킷에 빈티지 청바지를 입는 정도가 '상반된 문화에 급진적 교류'로 소비되던 시대였으니,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 무렵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가구디자이너로 일한 라프시몬스<Raf Simons>는 우연한 기회로 패션계에 데뷔해 훗날 다가올 남성복 경향에 획기적인 변화를 제시하고, 남성복을 넘어 패션문화시장 전반에 정서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끼친 명실상부(名實相符) 이 시대 최고의 패션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그가 만든 남성복은 줄곧 하나의 커다란 정서 안에서 몇 가지 결로 나뉘어왔다. 십 대들의 유니폼이라 할 수 있는 교복을 현대적인 형태로 재해석한 1995년 데뷔 컬렉션을 시작으로 데이비드보위를 위시한 펑크스타일과 스케이트보더들을 모티브로 한 십 대들의 주된 배경과 놀이문화가 주제가 된 세기말의 컬렉션들은 곧 다가올 21세기 남성복 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도할 일종의 포문과도 같았다. 이후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선보인 십 대 소년들을 매개로 한 기발하고, 놀라운 시도들이 넘쳐났던 그의 컬렉션은 매 시즌 저마다의 주제의식과 십 대라는 매개체를 일관된 정서로 풀어내 당시 패션계에서 단연코 독보적인 아우라를 뿜어냈다. 필자가 가장 열정적으로 좋아했던 그의 컬렉션들도 모두 이 무렵에 쏟아졌다고 해도 될 정도다. 그렇게 시즌을 거듭하며 연이어 쏟아진 하나의 학원물 시리즈 같던 그의 남성복은 새벽을 지나 아침을 맞이하는 자연의 섭리처럼 2005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변화를 맞았다. 당시 공석이던 질 샌더<JIL SANDER>의 수장자리에 그가 낙점되면서 미니멀리즘의 현대적인 정수를 모색하던 그의 머릿속은 독립된 남성복 레이블까지 한결 성숙하고, 간결한 느낌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전에 그의 남성복을 이루던 만화 같은 그래픽과 거친 재단 방식은 한층 미래적이고 정돈된 방향으로 선회되었다. 이후 존갈리아노의 후임으로 크리스티앙디오르<Christian Dior>의 여성복 꾸띄르 컬렉션을 지휘하며 유서 깊은 하우스 패션에 역사와 상징성을 특유에 현대적인 감각으로 선보이며 패션디자이너로서 새로운 변곡점을 지나온 라프시몬스<Raf simons>는 작년부터 미국을 대표하는 패션브랜드 캘빈클라인<Calvin Klein>의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hief Creative Officer)로서 새로 개설된 <205W39NYC> 컬렉션 라인을 포함한 캘빈 클라인에서 전개하는 모든 상품 라인에 디자인과 마케팅을 총괄하며 예술과 상업성이 혼합된 브랜드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또한, 그의 이러한 행보는 데뷔 이래 줄곧 유럽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오랜 남성복 브랜드의 거점을 처음 뉴욕으로 트는 계기로 이어진다. 이후 몇 차례 뉴욕에서 선보인 남성복 컬렉션에서 그는 다양한 문화예술과의 동경이 깃든 조우로 과거보다 선명하고, 관록 할 만한 컬렉션들을 연이어 선보이며, 세계적인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이어가고 있다.  어쩌면 선대 디자이너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곳에 마음을 빼앗긴 그의 초기컬렉션은 지금 살펴봐도 상당히 이색적인 요소들이 많았다. 이미 선배 디자이너인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먼저 시도한 (옷의 크기를 과장되게 키우는 것에 중점을 둔) 사이즈의 대한 개념을 비트는 종류의 실험을 그는 일찍이 요즘 시대가 열광하는 항공 재킷과 스웨트셔츠에 접목했다. 여기에 십 대들의 심상이 담긴 기하학적인 그래픽과 단어들을 암호처럼 나열하는 것으로 그가 추구하는 남성상의 근본을 브랜드의 중심 요소로 내세웠다. 폭이 좁고 가는 실루엣에 테일러드 재킷과 코트, 셔츠에 소매를 거칠게 자르고, 디자이너의 서명으로 보이는 ‘R’ 자수를 터틀넥 목 부분과 셔츠 가슴부분에 작게 새긴 방식에 작업들은 얼핏 보기엔 난해해 보여도 누구나 알법한 남성복의 구조를 비틀고 새로 적립하는 과정의 일환이었다.  특히 실제 공군들의 유산으로 알려진 패션계에선 펑크와 하위문화의 상징물로 정착한 항공(MA-1)재킷에 크기를 과장되게 키우는 작업은 몇 시즌 째 그의 초기컬렉션에 연이어 등장한 시그니처 디자인으로 이후 그의 컬렉션을 레퍼런스로 삼은 무수히 많은 후대 디자이너 브랜드와 하이엔드 스트릿웨어 브랜드의 대표적인 주류상품의 일환으로 현재까지 그 명맥을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 또한 스웨트셔츠와 후드 파카 역시 커다란 변주의 일환으로 그의 컬렉션 곳곳에 등장했다. 기존에 베이직한 일상복과 스포츠 브랜드의 일률적인 로고사용방식에서 벗어나 십대들의 초상이 담긴 만화 같은 그래픽과 몽상적 언어들을 요소마다 심미적으로 집어넣음으로써 기존에 패션 아이템의 생활양식과는 전혀 다른 정서로 탈바꿈시켰다. 특히 라프시몬스가 어린 시절 심취했던 영국 록 밴드들의 모습과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의 음악들은 훗날 그가 만든 스웨트셔츠와 초기컬렉션 아이템 곳곳에 상징적인 그래픽과 패치워크로 등장해 중요한 오마주로 남았다.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9.11테러 사건을 풍자한 느낌의 컬렉션으로 주목받은 2002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그는 모델들에게 무정부적 텍스트가 나열된 후줄근하고 구멍 난 스웨트셔츠를 입히고, 아랍인을 연상케 하는 복면을 씌워, 횃불을 들고, 컬렉션 장을 비장하게 걷게 했다. 또 한 2003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그가 유년시절 동경한 밴드 조이디비전<Joy Division>과 뉴오더<New Order>의 앨범표지 디자인을 전담했던 피터셀비<peter saville>의 그래픽작업을 자신에 컬렉션 제품 곳곳에 접목한 사례는 음악과 패션이 가장 아름답게 결합한 순간으로 꼽히며 현대에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이밖에도 동양종교에서 착안한 주술장식과 파스텔컬러가 주를 이룬 2004년 봄/여름 컬렉션과 밀리터리 스타일의 원조와도 같은 카모풀라쥬 봄버와 각종 패치워크 장식들이 공존하고, 커다란 실루엣의 옷들이 독창적인 레이어드 스타일을 만들며, 어두운 분위기를 풍긴 2001년 가을/겨울 컬렉션까지 다 열거할 순 없지만, 2000년부터 2004년까지 그의 컬렉션은 당시 패션계가 소홀하게 여겼던 세대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목소리이자, 복잡하고 비범한 스타일의 혼합된 결과물이었다. 십대 소년이라는 한정된 주제를 가지고 이토록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낸 디자이너는 훗날 그<라프시몬스>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그를 알기 전 탄탄한 근육질 몸매와 도회적인 남성들이 지배한 20세기 남성미의 기준은 일찍이 록 키드 이미지를 차용해 디올<Dior>의 남성복을 창조한 에디슬리먼<Hedi Slimane>의 등장과 함께 허물어 진 거라고 믿어왔었다. 하지만 그 밑바탕엔 1990년대 먼저 데뷔한 라프시몬스<Raf Simons>의 조용한 도전이 있었다는 사실을 늦은 2003년 무렵에 처음으로 알았다.  그의 유년시절은 지금 그가 당면한 호화로운 패션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형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는 상영관이나 백화점조차 없는 벨기에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야간 경비원 아버지와 청소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에게 환경이 주는 심미적인 교감은 아주 제한된 것이었다. 새로 나온 패션 컬렉션을 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지금 그가 숨 쉬는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여기는 갤러리에서 예술작품을 본다는 것 역시 망상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저 좋아하는 뮤지션의 음악을 듣기 위해 동네에 작은 레코드점을 배회하는 것만이 유년 시절 그의 유일한 흥밋거리였다. 그렇게 주어진 환경에서 영국 뉴웨이브 밴드 음악에만 빠져 지내던 시골 소년의 사소한 흥미와 기억들은 

 

훗날 자신이 만들 남성복 브랜드에 중요한 주춧돌이 되어 새롭게 등장했다.  성냥개비처럼 깡마른 소년들의 퀭한 눈동자와 낯선 사회에 대한 반감을 품은 고독한 십 대들의 정서는 아마 유년시절 그가 직접 보고 느낀 유럽 소년들의 실존하는 초상 그 자체였을 것이다. 물론 최근에 새롭게 뉴욕으로 둥지를 옮긴 그의 남성복 역시 매우 좋아한다. 여전히 다른 디자이너와 패션에 대한 동경이 마음속에 일어날 때도 항상 그의 컬렉션과 아이템을 살핀다. 하지만 오늘날 아메리칸 드림이 그에게 손을 내밀고, 흑인음악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그의 초기컬렉션의 가치를 천정부지로 끌어올리고 있는 지금 시대는 나에게 어딘지 모를 낯섦이 있다. 폐쇄성과 고독함이 짙던 그의 과거 컬렉션들에 대한 그리움이 마음속에 일어서일까?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 디지털 매체라는 용어조차 생소한 시대에 내가 추종하고 생래적으로 지니지 못한 정서를 패션을 통해 소유하고 싶었던 몽상들이 그의 옷과 장신구엔 가득했다. 아름다움을 향한 모든 기준이 기성 방식을 비틀던, 마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꿈처럼 느껴져 더욱 눈부셨던 그의 과거 컬렉션들은 소년티를 몇 번은 더 벗은 지금도 내 생활 반경 곳곳에 여전한 열기로 남아 있다. 그래서 좋다. 저마다 창의성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신진문물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푸르디푸른 시절을 회상하게 만드는 장인의 손길이 삶의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늘날 살아가는데 큰 위로와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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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hinjunho
Journal2017. 2. 26. 22:10

PATRIK ERVELL


처음 그의 컬렉션을 접한 건 2008년 무렵이었다. 당시 남성복에 경향은 미국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그들

이 컬렉션을 통해 선보인 테일러드재킷<tailored jacket>과 타이<Tie> 옥스포드셔츠<Oxford shirt>와 치노팬츠<Chino pants> 같은 옷들은 한동안 유럽 디자이너들의 위세와 전위성에 지친 사람들의 삶에 자연스럽고 현명한 기준이 됐다. 특히 스포츠웨어<sportswear>에서 유래한 그들의 경쾌하고 활동적인 라이프스타일은 남성복의 오래된 격식과 남루한 구조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다. 덕다운<duck down>으로된 테일러드재킷과 바지 밑단을 복사뼈가 보이게 돌돌 말아 올린 방식의 옷들은 모두 이 무렵 미국의 신생 디자이너들에 의해 파생된 결과물들이다. 물론 그들이 만든 옷은 유럽과 여느 일본 디자이너들의 옷처럼 현란한 패턴이나 화려한 컬러로 무장하진 않았지만, 그에 반해 옷에 깃든 '투명한정성'이 있었다. 상질의 트위드 울<tweed wool>이나 시어서커<Seersucker> 같은 유서 깊은 직물을 사용해 직접 재단하고 바느질한 흔적들은 그들의 이러한 정성이 옷을 통해 잘 드러나 있는 부분이다. 이렇듯 세계패션의 화두가 유럽에서 조금씩 미국으로 옮겨갈 무렵 V MAGAZINE의 컨트리뷰팅 패션 에디터<contributing fashion editor>에서 디자이너로 전업한 미국 캘리포니아 지방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패트릭에르벨<PATRIK ERVELL> 역시 클래식 복식에 기반을 둔 아메리칸 스포츠웨어로 자신의 브랜드를 뉴욕컬렉션 중심에 세웠다. 당시 그가 컬렉션을 통해 선보인 옷들은 당연히 미국 디자이너들의 강세를 증명하는 효시 중 하나로 보였지만, 등장하는 옷의 면면이나 컬렉션에 흥미를 유발하는 중심요소에는 그의 출신에서 비롯된 클래식에 대한 사적 견해가 하나의 현대적인 방식으로 나타나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은박지처럼 바스락거리는 금색 PVC 소재를 사용해 만든 재킷, 서로 다른 스트라이프 패턴을 조합해 만든 시어서커 소재의 재킷은 에어재킷<air jacket>이란 명칭과 함께 윈드브레이커 재킷의 새로운 변형으로 그의 초기컬렉션에 연이어 등장한 대표적인 시그니처 스타일 중 하나다. 또 색이 자연스럽게 바래거나 진흙이 묻은 것처럼 가공된 형태의 청바지들은 그가 리바이스 청바지의 기원인 미국 캘리포니아 지방 출신임을 대변하는 가장 필연적인 단서로 현재까지 그의 컬렉션 전반에 꾸준한 애정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실제로 그는 과거 남성패션지 GQ<지큐>와의 인터뷰에서 "리바이스<Levis> '청바지<jean pants>'나 스포츠 브랜드에서 출시하는 '윈드브레이커<windbreaker>(바람막이) 재킷'에서 가장 선명한 클래식을 실감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독자적인 사고는 그가 컬렉션을 구상하는 핵심적인 배경을 결코 먼 곳에서 찾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는 불현듯 도심에서 벗어나 광활한 대자연을 배회하며 컬렉션에 대한 영감을 갈구하지도 않으며, 당대 예술가들의 예술작품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살피며 패션을 통해 헌정하는 목적을 띄지도 않았다. 오로지 그의 주변 친구들과 동료 예술가 또는 자신이 나고 자란 주변 환경에서 컬렉션에 대한 단서를 발견하고 차용하는데 능했다. 이 밖에도 그의 초기 컬렉션을 상징하는 둥근 카라가 매력적인 셔츠라던가, 가늘고 수더분한 실루엣의 바지 그리고 남색과 베이지색 사이에 파스텔컬러를 끼워 넣는 형태의 작업들은 비록 선대 디자이너들이 추구한 유럽 거리의 소년들의 모습처럼 고독하거나 날카로운 잔상을 남기진 않지만, 그가 만든 옷처럼 풋풋하고 따스한 매력을 풍기며 아직은 잘 전해지지 않은 미국 소년들의 매력을 컬렉션을 통해 아름답게 표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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